본문 바로가기

독충

(8)
[하이퍼서사-글루토니] 작은 방 (←이전이야기) “여기는?” “음? 일어났군요. 잠시 더 주무셔도 되는데.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준비가 끝나니까.” 수술 등이 눈에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장소 아니, 수술받았던 수술대 위에 내가 누워 있었다. 벌레를 심어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엔 빼내기 위해 다시 이곳에 끌려왔다. 아직 수술대에 묶여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 머리가 개운하고 몸 상태가 좋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시 확인해봐!” 곁에서 수술준비를 하고 있던 정철이 자료를 가져온 조수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하면 주위가 어수선하게 변했다. “벌레, 벌레 어디 갔어!” 서류를 집어 던지며 정철이 내 멱살을..
[하이퍼서사-글루토니] 하얀 방 (←이전이야기) 하얀 방. 눈을 떴을 때 그곳에 있었다. 저 멀리 어릴 적 내가 보인다. 주변에는 장난감과 테이블에는 과자와 커피가 있다. 옆에는 조금 젊었을 적의 엄마가 같이 놀아주었다. 그것을 나는 말 없이 지켜봤다. 그들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나도 섣불리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하얀 방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학생 무렵으로 변하자 내 주변에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무렵에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됐다. 저 멀리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어린 내가 쫓아간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이내 놓치고 말았다. 어린 내가 울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벌레도 울었다. (다음이야기 →) (스토리텔러: 박상현)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
[하이퍼서사-글루토니] 두개의 방 (←이전이야기) (다음이야기→) (스토리텔러: 박상현)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에 따라 라인센스가 부여됩니다.
[하이퍼서사-글루토니] 과실 (←이전이야기) 그 뒤, 다시 연구소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나는 지금 뭔가 이상하다. 정철은 웃으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케이스를 내게 건넸다. 저번과 똑같이 병과 주사가 들어있었다. 이제 곧 수확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나를 돌려보냈다. 심호흡했다. 진정되지 않는다. 손이 떨리고 무서웠다. 이제는 도망칠 방법이 없다. 떨리는 손으로 팔뚝에 주사를 넣었다. 그러자 몸속의 벌레가 날뛰기 시작했는지 온몸에 고통이 전해졌다. 온몸이 비틀린다. 평소보다 심한 고통이 찾아와 얼마 참지 못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벌레가 울고 있다. (다음이야기→) (스토리텔러: 박상현)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
[하이퍼서사-글루토니] 조짐 (←이전이야기)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마트 안에서 후드 옷에 달린 모자를 최대한 푹 눌러썼다. 수상하게 보이더라도 되도록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가려고 했는데, 계산도 하지 않고 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건방져 보이는 아이의 부모를 찾았다. 저 멀리서 아이를 내버려 두고 다른 아줌마하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말해도 소용없어 보이네……. 민폐다. “야, 그거 계산하고 나서 먹어.” “시꺼, 저리 가.” 아이에게 주의를 시키려 했는데, 귀담아듣기는커녕 귀찮다는 듯이 내게 저리 가라고 손을 저었다. 화가나 억지로 먹고 있는 과자를 빼앗으려 하자. “아팟!” 아이가 내 손을 강하게 깨물었다. 살점이 조금 뜯겨나갔지만 억지로 손을 뺐다. 다친 ..
[하이퍼서사-글루토니] 몰골 (←이전이야기) “ 이게 뭐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말이 아니다. 파여있는 양 볼과 눈에는 생기가 없다. 오랜 시간 정리하지 않은 앞머리가 눈을 가린다. 죽어가는 내가 서있다. 새삼 몸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까,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제 와서 죽는 게 무서워진 건가? 호흡이 가팔라지고 손이 떨린다.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손을 피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고 비릿한 피의 맛 대신한 달콤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다음이야기→) (스토리텔러: 박상현)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에 따라 라인센스가 부여됩니다.
[하이퍼서사-글루토니] 혈흔 (←이전이야기) 뚝 뚝 뚝. 코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세면대를 물들인다. 요즈음 코피가 자주 나온다. 약의 부작용인가? 아니면 벌레 때문인가? “신기하네…….” 세면대에 떨어진 피에서 쇠 비린내가 아니라 향기로운 향기가 난다. “아하하하하,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나!” 왠지 모르게 피가 맛있어 보인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다음이야기→) (스토리텔러: 박상현) 이 저작물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에 따라 라인센스가 부여됩니다.
[하이퍼서사-글루토니] 두통 (←이전이야기) 어두운 방. 매일 보던 천장. 익숙한 내 집에서 눈을 뜬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처음에는 모든 게 꿈이라고 느껴진다. 옆에 종이와 함께 병과 주사가 넣어져 있는 케이스가 있다. 종이에는 독충의 먹이가 될 소량의 독을 조금씩 몸에 매일 주입하라고 적혀있다. 젠장. 종이를 구겨 던진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봉합된 배가 욱신거린다. 힘겹게 베란다로 간다. 저 멀리 처음 보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심 불쾌하다. 감시받는 게 이렇게 불쾌할 줄이야…….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는다. 병에 담긴 소량의 독을 주사에 넣은 뒤, 심호흡한다. 그리고 팔뚝에 주사를 찔러넣는다. “아파!” 호흡이 거칠어진다. 팔뚝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저릿한 감각과 함께 정신도 아찔해진..